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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라면 뭘 위해 수행해야 하나 무아 & 수행 & 깨달음 득도 깨달음을 얻는 것은 무엇인가 네이버 블로그_4

무아無我에 대한 소고小考 1 깨달음해피스님 181114

혜능의 제자인 하택신회는 생각이 일어나는 순간, 그것을 알아차리면 생각이 사라져 무념(無念)이 된다고 말한다. 하늘에서 비가 오고 번개 치고 눈이 오는 것은, 자연스런 자연현상에 의하여 발생하는 현상임으로 이해합니다. 수많은 불자들 역시 이 무아를 잘 모르고…있고, 또 이걸 알아볼 생각이 별로 없다. 스팸 게시물이 확대 생성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문구 및 사용 제한기간을상세하게 안내해 드리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 드립니다. 모두가 행복한 인터넷문화를 만들기 위한 네이버의 노력이오니 회원님의 양해와 협조 부탁드립니다.

첫째는 나의 과거 기억 때문입니다. 나의 정신이란 모두 내가 과거에 경험한 좌절, 실패, 상처, 고통, 후회들에 대한 기억입니다. 과거에 받은 상처와 고통들이 현재의 정신에 불안과 강박을 재연합니다. 이 공부를 하면서 처음에는 생각이 일어나면, 그 생각을 내가 하는 것이며 이에 따라 주객 분리가 일어나므로, 그것이 불편하여 생각이 없는 무념 상태에 있으려고 한다.

진실은 ‘익숙함’에 의해 판단되는 것이 아니다. 그 익숙함의 본진은 바로 이원적인 생각구조이며, 우리의 탐구는 그 이원적인 생각 구조 자체를 포함하고 넘어서 있다. 여기서부터가 진지한 탐구의 시작이다. 대부분은 그 가능성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왔던 데로 살아간다. 그중 일부 호기심 많은 도전자들이 탐구의 여정을 시작한다.

그 속에는 어떤 불안도 공포도 없습니다. 먼저 무아에 대한 깨달음은 왜 어려운 일일까요? 그리고 그것은 언제, 어떻게 깨우쳐 질까요? 마지막으로 무아가 깨우쳐지면, 어떤 유익함이 있는 것일까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면 올바름이란 무슨 뜻일까? 이는 존재이유에 근거하고 이에 따라 존재하는 당위를 말한다. 존재의 근거가 인연이고, 존재 방법은 인연에 따름, 즉 당위이니 올바름은 스스로 그러함에 따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인연에 따름이고 스스로 그러함에 혹은 조건에 따름이다. 위에서 “여래는 모든 법이 올바른 도리를 따르는 것이다.”라 하였으니, 이를 바꾸어 말하면 “여래는 모든 법이 인연에 따르는 것이다”라고 할 수 있다.

  • 생각이 정지되고, 고요와 정적을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 그러나 ‘무아’라는 단어를 접하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 당신을 자유롭게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 마지막으로 무아가 깨우쳐지면, 어떤 유익함이 있는 것일까 하는 문제입니다.
  • 깨달음을 갖는다는 것은 자신의 정신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 하지만 생각이 있을 때 주객 분리로 느끼는 것은 그 생각을 내가 한다는 착각이 들어가기 때문에, 주객 분리라는 느낌이 일어나는 것이다.

개별적인 존재성이 없다는 말은 모든 것이 분리된 것이 아닌 하나라는 말이며, 그것을 우리는 비이원 혹은 불이(둘이 아님)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각각의 대상들이 마치 따로 분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개별적인 존재성이 부재하기 때문에 분리된 것이 아니며 그것을 이름하여 ‘비이원’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이원과 무아는 결국 같은 말의 다른 관점에서의 표현인 것이다. 생각을 끊어 무아를 만드는 방법은 나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불안과 고통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직접적인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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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에 휩싸이지 않으려고 더 깨어있으려 하고, 생각의 소란에서 벗어나려고 더 고요해지려 하고, 감정의 격심한 요동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더 무심해지려고 하고….. 이용자 분들이 홍보성 도배, 스팸 게시물로 불편을 겪지 않도록 다음과 같은 경우 해당 게시물 등록이 일시적으로 제한됩니다. 안녕하세요.이 포스트는 네이버 블로그에서 작성된 게시글입니다.자세한 내용을 보려면 링크를 클릭해주세요.감사합니다.

무념(無念)은 잠들거나 기절하여 생각이 끊긴 것과 같은 상태를 말하며, 무념에서는 나도 함께 사라지며, 만약 무념 상태에서 그 무념을 알아차리는 인식 작용이 있다면. 여기서 법法이란 무상 고 무아가 아니고, 공空이다. 공空을 봐야 법을 본 것이다. 다른 표현을 사용해주시기 바랍니다. 건전한 인터넷 문화 조성을 위해 회원님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기억(記憶)의 총합(總合)이 들어있다. 우린 이걸 ‘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건 완전히 정보(情報)의 집합(集合)일 뿐, 기억의 총합일 뿐, 이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삶과 죽음 사이에 다리를 놓고, https://bauhutte-g.com/kr-57 죽음 뒤의 사후세계를 알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생각은 없지만 알아차림은 있는 상태는 많은 불교 니까야 문헌에서 찾을 수 있다. 초기불교에서는 색계 4선 중에서 1선정에서 심사(尋伺)라는 생각 작용이 있지만, 2선정 이후에는 심사 작용이 사라진다고 한다. 그래서 이걸 실제(實際)가 아닌 관념(觀念) 또는 허상(虛相)이라 표현한다. 진짜 ‘나’가 아니라는 말이다.

무아(無我)에 대한 소고(小考) – 1.깨달음(해피스님

내 정신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내 정신의 핵심은 과거 기억입니다. 나의 과거 기억과 죽음, 욕망의 문제를 하나씩 찾아서 이해해 나가기 시작하면, 어느 날부터 머릿속 불안과 고통은 현저하게 줄어듭니다. 한편, 혜민 스님은 강연에서 앎 즉 아는 그것이 바로 나라고 설명하였는데, 앎 즉 지(知)는 ñāṇa입니다. 이때, 식(識)은 ñāṇa와 구분되는 것으로의 viññāṇa입니다.

그 후 나의 머릿속은 놀라운 변화가 나타납니다. 생각이 정지되고, 고요와 정적을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이 고요와 정적이 처음에는 몇 시간, 며칠을 거듭되다, 나중엔 나중엔 생활화됩니다. 머릿속이 텅 비인 상태 속에서, 저녁에 밖에 나가 소슬히 불어오는 바람을 맞아 보십시오. 그 상태 그대로 음악을 듣거나, 밖에 나아가 ‘있는 사실 그대로의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생명이 끊기는 것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내세를 만든 것입니다. 생각이 불안을 만들고, 고통을 확대합니다. 삶과 생활은 내 통장, 가족관계, 내 소유, 내 명예가 지속되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죽음은 이 모든 관계가 하루아침에 절벽처럼 뚝 끊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명상을 통해 세상을 보다

각각의 개별적인 대상들의 관점에서 그것들의 고유한 존재성, 즉 존재라고 할 만한 그 무엇도 없다는 의미다. 며칠 전에 명망 있는 한 스님이 TV에 나와 불자들과 일문일답을 나누는 것을 보았습니다. 스님은 무아에 대한 깨달음은 부처님이나 가능한 일이지, 일반인은 감히 범접할 수 없다 했습니다. 무아와 깨달음, 실제로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요? 어떤 해설에도 이렇게 번역하지 않고 “진여(眞l如)임을 뜻하다, 여여(如如)하다는 뜻이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2009년 6월 30일 네이버 여행 서비스가 종료되었습니다. 네이버 여행 서비스를 이용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더 좋은 서비스로 보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누군가 깨어났으니 당신도 깨어납니다. 깨달음에는 종교와 신비가 필요 없습나다. 당신을 자유롭게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유는 우리의 생각 속에 항상 불안과 고통이 꽉 메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근심, 걱정이 너무 많아 머릿속을 비울 수가 없습니다. 무아로 가는 길목을 가로막는장애물을 몇 가지로 요약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생각에 빠지지 않는 수행을 지속하면서 생각을 관하는 힘이 강해져 생각과의 동일시가 없어지면, 그 생각을 하는 者가 없이 생각은 그저 조건에 따라 일어나는 것으로 알아집니다.

마음속 불안과 고통의 기억은 나 자신의 과거 기억 속에서 찾아내야 합니다. 나만 죽지 않으려는 생각은 생명에 대한 집착일 뿐입니다. 생명에 대한 무의식적 본능입니다. 죽음의 문제도 관찰과 이해로 충분히 해소되는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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